아프리카 여행의 첫걸음 = 예방접종
아프리카 여행을 앞둔 사람들은 예방접종에 관심을 갖습니다. 황열병, 말라리아, 콜레라 같은,,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낙후된 나라, 더운 지방으로의 여행을 앞두고 예방접종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에티오피아 입국을 하는데 반드시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은 없습니다. 꼭 하나를 맞는다면 황열병 예방접종을 하고, 상술이 뛰어난 병원에서는 황열병과 함께 콜레라 예방접종을 권하고 돈을 더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특히 아디스 아바바만을 여행한다면 황열병 예방접종도 굳이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방랑객은 황열병 예방접종을 했습니다. 이 예방접종은 집 근처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대학병원 같은 큰 의료기관이나, 공항에 있는 검역소에서 미리 1주일 정도 여유를 두고 예약을 한 다음 접종을 할 수 있습니다. 주사약이 흔하게 병원마다 있는 거 아닌 거지요.
황열병 접종을 하면 대략 3일에서 2주 사이에 몸이 많이 아플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른데, 너무 아파 병원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사를 맞았는지 본인도 실감하지 못한 채 상황이 끝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방랑객은 1주일 정도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길래, "체질이구나.." 생각을 했지만 10일째 되는 날부터 3박 4일간 약 먹고 참을 만한 정도의 몸살을 겪어야 했습니다.
한 번 맞으면 평생 면역이 된다고 하니 후회하지는 않습니다만, 아디스 아바바와 주변 지역만을 여행한다면 굳이 맞을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황열병 예방접종은 최소 10일이 지나야 면역이 생기기 시작하기 때문에 너무 촉박하게 주사를 맞고 아프리카로 가게 되면 면역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여유 있게 접종을 하는 게 좋습니다.
안녕! 에티오피아항공
2018년 6월, 방랑객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가보고 싶었던 나라도 아닌 에티오피아로의 첫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방랑객의 거소가 있는 부산에서 내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처음 만나는 에티오피아항공 비행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꼬리날개의 항공사 마크는 에티오피아 국기를 날개 형태로 변형한 것입니다. 에티오피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국기의 색상을 일상생활에 많이 활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에티오피아항공의 마크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꼬리날개 부근에 드림라이너 Dream Liner 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우리나라와 에티오피아를 오고 가는 비행기는 최-최신형이라 할 만한 보잉 787 드림라이너입니다. 에티오피아는 분명 극빈국에 속하는 나라이지만, 항공산업 면에서는 제법 앞서가는 면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겨우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1946년, 에티오피아항공은 이미 국제선 항공기를 날리기 시작했고,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볼레국제공항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허브공항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높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듯, 파일럿부터 객실 승무원까지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비행편을 띄우기도 하고, 두바이 에어쇼 같은 이벤트에서 최신형 항공기를 수십대씩 계약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플래그십 항공사들도 새로 들여왔다면 자랑하는 보잉787을 극빈국 에티오피아항공에서는 일상인 듯 띄우는 분위기입니다.
모두 잠든 후에,,
2018년 6월, 코로나 같은 건 생각도 못할 시절이라 탑승수속 카운터를 안내하는 전광판에는 다음 날 아침까지의 비행기가 빼곡합니다. 에티오피아항공은 에미레이트항공과 함께 주로 K 구역에서 탑승수속을 하게 됩니다. 두바이를 허브공항으로 하는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해서도 두바이공항 환승을 거쳐 에티오피아로 갈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항공은 자정 넘어 새벽 1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합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항공을 처음 타는 분들은 날짜를 착각하기도 하죠. 12월 3일에 출발하는 항공편이라면 실제로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때는 12월 2일 밤이 되고, 법무부의 출입국기록에도 12월2일에 출국한 것으로 나오겠죠.
에티오피아로 가는 손님은 대부분이 우리나라 국민들입니다. 모두가 에티오피아를 목적지로 하는 것은 아니고, 아프리카의 허브 항공사인 에티오피아항공을 이용해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로 환승해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여행 목적은 관광보다는 출장, 선교가 대부분입니다. 에티오피아항공은 항공사 동맹체 중 하나인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으로 아시아나항공으로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시바 여왕의 이름을 딴 시바 마일리지라는 마일리지 프로그램이 따로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시아나 마일리지 적립이 훨씬 효율적이죠.
체크인 수속을 마치면 대략 밤 10시, 공항 곳곳에 낮과 다른 모습으로 잠들어 있습니다. 비행기가 출발하는 새벽 1시면 가족, 친구, 동료들도 모두 잠든 시각이죠. 인천국제공항도 롯데리아 같은 24시간 영업 점포를 몇 개 빼면 대략 밤 9시면 문을 닫습니다. 면세점도 9시면 대부분 문을 닫고, 시내 면세점이나 인터넷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건을 찾는 면세품 인도장은 문을 열고 있죠.
에티오피아는 비자가 필요한 나라입니다. 요즘은 출국 전에 인터넷으로 비자를 받는 e-Visa가 일상화되었지만 2018년만 해도 에티오피아 입국심사대에서 도착비자를 받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30일 이내 관광비자는 50달러입니다. 우리나라 여권으로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나라가 수십 개국 이상이지만 에티오피아는 우리나라는 물론 많은 나라들에 무비자를 시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경제력이 약한 에티오피아 화폐 비르는 에티오피아 밖에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외국과의 거래에 달러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죠. 달러로 받는 비자 수수료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입니다.
에티오피아항공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탑승권과 기내에도 에티오피아 국기의 색상이 엿보입니다. 첫 여행을 시작하기 전 에티오피아항공을 이용했던 분들의 인터넷 후기를 보니, 기내 시설이 썩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어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비행기기 신기재인데 비해 좌석 시트 등은 삐걱거리거나 가라앉은 부분이 있거나,, 관리가 아주 잘 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비행기는 새 비행기를 사는데, 시트 같은 건 예전 비행기에서 쓰던 걸 옮겨오기 때문에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관리하는 역량이 부족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중국 건설 인부들이 오고가면서 비행기 내부를 망가뜨린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는 중국 상하이를 방불케 하는 으리으리한 고층빌딩들이 많이 건설되고 있는데, 여기에 중국 자본이 들어가 있고, 중국 건설회사들은 건설 인력을 현지에서 찾지 않고 중국에서 직접 인부들을 데려와 쓴다고 하니 나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기내가 완전 열악한 건 아닙니다. 이코노미석도 개인 모니터가 모두 설치되어 있고 영화나 뮤직비디오 같은 콘텐츠도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모니터에는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향하는 비행구간이 표시되어 있네요? 사실 에티오피아항공은 우리나라와 에티오피아 간 직항이라고는 하지만 그 앞으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구간이 또 있습니다. 에티오피아항공은 일본 동경 나리타공항에서 일본 손님들을 태우고 우리나라 인천공항에 내린 뒤, 다시 우리나라 손님들을 태우고 에티오피아로 날아갑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볼 때는 에티오피아 직항이 아닌 우리나라 경유편이 되는 것이고, 그 흔적이 개인 모니터에 남아있던 거죠.
2018년 초까지는 비행 노선이 더 복잡했다고 합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에티오피아로 바로 가지 않고 홍콩에 들러 홍콩과 중국 손님들을 태운 후, 에티오피아로 날아갔기 때문에 여정도 복잡하고 길어지는데다 승객들의 불편도 컸다고 하죠.
비행기에서 처음 만나는 에티오피아
대략 12시간을 날아가는 에티오피아항공은 비행을 시작한 1시간 후인 새벽 2시 경에 저녁밥을 줍니다. 기내식은 나름 화려합니다. 생선류를 선택했는데 과 생선이 나왔고, 빵과 버터, 디저트로 먹을 치즈 케이크도 나왔습니다. 샐러드는 오뚜기 드레싱과 함께 나왔네요. 아이비 크래커도 흥미롭습니다.
밥은 우리가 보통 먹는 쌀이 아닌 동남아 스타일의 안남미로 지은 밥이 나와습니다. 길쭉하고 찰기가 없는 이 쌀은 푸석푸석하고 독특한 향이 있다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지만, 전 세계 쌀 소비 인구의 70% 이상이 안남미를 먹는다고 하죠. 오히려 우리가 먹는 쌀 품종이 비주류인 셈이지요. 기내식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원래 기내식이란 게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만 맞추는 게 아니라 '누가 먹어도 괜찮을 정도'의 맛을 지향한다는 걸 감안하면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맛과 구성이었습니다.
방랑객은 비행기를 타면 맥주나 와인 같은 술을 잘 마시지 않습니다. 평소에도 술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이날은 에티오피아 항공을 처음 타는 역사적인 날이라 낭만을 즐겨볼 객기에 음료로 와인을 선택했습니다. 비행기에서 주는 와인은 잔에 따라주거나 혹은 작은 병으로 주기도 하는데, 병뚜껑을 개봉해서 주는 비행기가 더 많았던 것 같네요.
뚜껑을 따지 말고 그냥 병으로 달라고 요청을 해도, 항공사 규정이라며 뚜껑을 개봉해 주는 경우도 종종 봤습니다. 밤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며 와인을 홀짝거리겠다는 낭만은 금방 사그라들었습니다. 술에 애착이 별로 없다 보니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와인 욕심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에티오피아가 커피로 유명하다하니 커피라도 한잔 마셔보자 해서 커피도 한잔 받아 들었는데, 이때만 해도 커피에도 별 관심이 없던 때라 그냥 잔만 비우고 말았죠. 나중에 귀국편 비행기에서 유심히 살피니, 기내에서 파는 면세품 중 에티오피아 원두가 있었습니다. Moee 라는 에티오피아의 유명한 커피 브랜드인데, 서양인들이 많이 찾는 고급 호텔의 로비에서도 같은 커피를 팔고 있더군요. 여행 중 만나본 에티오피아 사람들도 모이 커피를 에티오피아 커피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좋은 커피임은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기내 판매 가격이 아디스 아바바 슈퍼에서 사는 가격보다 두배 정보 비쌌다는 겁니다. 에티오피아에 다녀오는 길에 커피를 사시려면 시내 커피숍 < 시내 슈퍼 << 볼레공항 면세점 < 기내 순으로 가격이 비싸다는 걸 기억하시고 유명 커피숍에서 당일에 로스팅한 커피를 구매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장거리 비행은 대부분 비슷한 루틴으로 운영됩니다. 저녁밥 배식과 퇴식이 끝나면 기내 소등을 해서 비행시간 내내 재운 다음, 도착 2시간 전쯤 기내 조명을 다시 켜고 아침밥을 줍니다. 아침밥 기내식 트레이들을 치우면 착륙 준비를 하고 착륙을 하게 되죠. 물론 기내 조명을 낮추긴 하지만 자고 안자고는 승객들 마음이죠. 주변을 둘러보니 일찌감치 잠든 분들도 있고, 선교 목적으로 여행을 나선 분들은 성경을 읽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와 에티오피아 사이의 시차는 6시간입니다. 새벽 1시에 인천공항을 떠날 때, 에티오피아는 저녁 7시로 우리나라보다 6시간이 늦습니다. 그래서 12시간을 날아가도 볼레공항에 도착하면 아침 7시 정도가 되어 있죠. 좋은 점은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하루를 정상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고, 안 좋은 점은 피곤해서 기나긴 입국수속과 세관수속에 더 지칠 수 있고, 얼리 체크인을 해주지 않는 호텔을 선택했다면 짐을 풀거나 씻기도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은 동쪽 끝이 뽀죡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를 포함하여 동아프리카 이 지역을 아프리카의 뿔 (Horn of Africa) 이라고 부릅니다. 모양새가 코뿔소의 뿔을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는데, 단순히 모양이 닮은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세계를 향한 아프리카의 도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뿔 끄트머리에는 소말리아가 있고 에티오피아는 그 안쪽에 있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이지만, 에티오피아가 갖고 있는 '아프리카의 리더'라는 상징성이 있어서 '아프리카의 뿔'을 언급할 때는 보통 에티오피아가 포함됩니다. 어찌 보면 아프리카의 미래를 에티오피아가 선도한다는 의미도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에티오피아에 가까와지며 창 밖에 밝아집니다. 보잉 787은 다른 비행기들과 달리 창문 가리개가 플라스틱 판을 올리고 내리는 게 아닌 전자제어 방식입니다. 기내 조명을 조절하듯 승무원들이 원격으로 창문을 어둡게 하거나 밝게 만들 수 있죠. 물론 창가 승객도 창문의 어두움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단점은 강렬한 햇빛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한다는 거죠. 대신 창문이 다른 비행기종보다 크기 때문에 낮 비행 때는 바깥 풍경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굿모닝, 아디스 아바바!
이제 아침식사가 배식됩니다. 도시락 뚜껑에 Fritatta 프리타타 라고 적혀있네요. 프리타타는 일종의 계란찜이자 이탈리아식 오믈렛입니다. 감자, 버섯, 소시지가 함께 나왔는데 맛은 좋았습니다. 아침식사 구색을 맞추려고 과일도 나왔고 크로와상과 딸기잼, 버터도 나왔습니다. 다른 항공사도 비슷하지만 아침식사를 배식할 때는 탄산음료는 카트에 싣지 않고 주로 과일주스류를 권합니다. 물론 콜라를 달라고 하면 잠시 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요.
방랑객은 장거리를 날아갈 때는 복도쪽 자리를 선호합니다. 특히나 밤 비행기를 탈 때는 창가에 앉아도 창 밖을 볼 수 없어 불편하고 답답하기만 하니까요. 복도 자리에 앉아야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고, 일어나 몸을 풀기도 편하죠. 이 날도 창가 쪽 3자리의 복도 좌석에 앉았는데, 안쪽 2자리에는 젊은 연령대의 에티오피아 여성 일행이 앉아있었죠. 장시간 비행에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방랑객 쪽으로 발을 뻗었다가 팔을 뻗었다가 하더니 나중에는 몸을 반쯤 기대서 왔습니다.
건조한 기후대에 사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신체 접촉에 거부감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싶어 그냥 넘겼죠. 나중에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냥 매너가 없어서, 비행기 많이 안 타봐서 그게 실례인 줄 모른다" 라고 답을 해주더군요. 이후에도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옆자리에 앉아 비행을 한 적이 많았는데 "비행기 처음 탔구나" 혹은 "생각이 많이 다르구나"라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경험의 부족을 탓하기보다는 '문화의 다름' 혹은 '순진하고 신선한 생각'으로 이해하면 재미가 있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며 점차 퇴출 수순에 놓인 기내 잡지도 이 때는 있었습니다. 한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에티오피아의 문화와 생활, 분위기 같은 걸 짐작할 수 있죠. 캐터필러 같은 중장비, 아그코 같은 농기계 광고가 있는 걸 보면 건축이 붐을 이루고 있거나 농업이 국가산업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릭어를 잠깐 배울 수 있는 지면도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80여 개 부족으로 구성된 국가이기 때문에 각 부족마다 언어가 다르기도 합니다. 그중 암하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죠. 이 지면에는 암하릭어를 영어로 음차하여 적어둔 내용만 있는데 실제 에티오피아에 발을 딛고 나면 꼬불꼬불하고 비슷한데 다르게 읽힌다는 암하릭어 문자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인류의 기원, 어머니의 땅 에티오피아
드디어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볼레국제공항에 첫 발을 딛었습니다. 방랑객이 어렸을 때부터 '이디오피아'로 부르는 게 더 친숙했고 (실제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발음을 들어보면 '이디오피아'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 산다는 나라, 에티오피아. 어떤 인연으로 이 낯선 대륙까지 오게 되었는지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들이 흥미진진합니다.
글 첫머리의 이야기처럼, 최소한 항공산업으로만 놓고 보면 에티오피아는 절대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가가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허브공항 볼레국제공항 Bole international airport는 오래된 공항이지만 (이후 신 청사를 완공했습니다.) 에티오피아항공 로고를 단 수많은 비행기들을 보면 에티오피아가 정말 못 사는 나라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에티오피아를 인류의 기원, 어머니의 땅이라고 합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인류의 기원으로 인정받는 최초의 인류 루시의 화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죠. 거리에서도 루시를 형상화하고 이름을 붙인 (아디스 아바바 최초의 미터기 택시) 루시 택시나 간판들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공항 주변은 약간 허전합니다. 주변이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죠. 볼레공항을 이륙해서 내려다보면 제법 큰 변화가들이 많은데 공항 주변은 눈에 띄는 것들이 없습니다.
밤 비행보다 더 힘든 에티오피아 입국 절차
에티오피아의 첫 여행에 운 좋게 주기장에서 버스를 타고 공항 청사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는 에미레이트항공을 이용했는데 버스를 타고 주기장을 달리는 행운은 다시없었죠. 버스 창 밖으로 흥미로운 공항 풍경을 많이 감상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데, 공항 청사에 들어오는 순간.. 진짜 낯선 나라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어둑어둑한 조명, 낡은 카페트, 다른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서 들어온 인파, 읽을 수 없는 암하릭 문자와 이해할 수 없는 음성들..
당시 입국심사는 대기 줄이 길어 1시간 정도 기다리는 건 일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자비자가 보급되어 많이 빨라졌죠.) 긴 줄을 기다리다 심사 창구에 서면, 도착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비행기 안에서 승객이 작성하는 입국 신고서 같은 건 없었고, 출입국심사관이 비자 스티커에 이름과 체류기간 등 정보를 볼펜으로 적었습니다.
숙소는 정확한 주소가 필요한데, 주소를 모르고 호텔 이름만 말했는데 호텔 이름을 심사관이 모르면, 주변의 다른 심사관에게 거기 아느냐 라고 또 물어봅니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되풀이하면서 시간이 늘어지는 거죠. 게다가 아프리카 다른 나라에서 온 입국자들에게는 상당히 엄격하게 심사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지체됩니다.
다행히 무료로 제공되는 와이파이에 쉽게 접속할 수 있어서, 지루한 대기 시간에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도착비자가 일상이던 2018년 당시에는 여권을 입국심사관에게 주고, 창구 뒤편으로 돌아가면 은행 창구가 있어서 거기에 50달러의 비자 발급 수수료를 내고 여권을 받아갔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전자비자를 받으며 사전에 수수료를 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은 모두 사라졌죠.
세관 검사도 까다롭습니다. 에티오피아는 관세가 높기로 유명하고 특히 가지고 들어와 판매할 가능성이 있는 전자제품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하게 통관을 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1만원짜리 라면포트도 새것으로 보이면 세금을 내고 가져가거나 반입을 포기해야 합니다. 방랑객도 라면 포트가 엑스레이에 걸려 가방을 열고 보여주니, 사용감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통과시켜주었습니다. 그 뒤로도 공유기 같은 전자제품이 걸려 정밀검사를 두 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해봤고, 뒤늦게 들어오는 동료들을 마중 나갔다가 동료들의 카메라 렌즈가 세관에 걸리는 바람에 5시간 이상을 기다렸던 적도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카메라 트라이포드도 걸린 적이 있는데, '보스'라 불리던 선임 세관원이 '이번만 봐줄 테니 다시는 가지고 오지 말라'라며 트라이포드를 돌려준 적도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로 가실 때에는 가급적 전자제품을 적게, 그리고 사용감 있는 물건들로 가지고 가시는 게 입국 수속시간도 줄이고 괜스레 신경 쓰이는 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