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불과 얼음의 나라'라고 부르는 아이슬랜드를 다녀왔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 방송에도 많이 등장해 친숙한 유럽의 한 나라로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아이슬란드로 가는 방법도 쉽게 떠올리지 못할 만큼 생소했죠.
북유럽에서도 가난한 나라라고 놀림을 받던 아이슬란드는 금융산업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했으나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휘청하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직항 항공편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당시의 외교부 자료에는 현지 교민이 1명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많이 힘들었는지, 일을 의뢰했던 현지 업체는 현지 화폐인 아이슬란드 크로나보다 미국 달러로 돈을 받기를 원했고, 심지어 숙박업체는 면세 술을 사오면 값을 비싸게 쳐주겠다며 술을 사다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항공편은 노르웨이나 스웨덴을 경유하는 방법과 영국을 경유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영국까지는 국적기를 탄 후, 다시 아이슬란드항공으로 갈아타고 수도 레이캬비크에 밤 늦게 도착했습니다.
자정 가까운 시각에 도착한 후, 미리 예약한 숙소에서 잠이 들었는데, 이른 아침 교회 종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도착한 날은 일요일,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던 것이었습니다. 밖으로 나와보니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드문드문 자동차만 보이는 한적한 분위기였습니다.
위 사진에 두 집 사이 골목에 숙소가 있는데 그냥 일반 가정주택을 손님들에게 내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집도 크고 안마당도 있어서 다른 누가 살고 있지는 않은지 겁이 날 정도였지요.
밖으로 나오니 커다란 주차장과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의 이름은 Háteigskirkja (하테이스키르캬 로 읽어야할까요?) 입니다.
Háteigsvegur 27-29에 있는 루터 교회로 특이한 외관이 관광객의 눈길을 끌지만 관광객에게는 개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957년에 지어졌고 4개의 뾰족한 첨탑과 십자가, 하얀 외벽이 인상적인 건축물입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Reykjavík는 당시 인구가 12만명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15만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나오는데 유럽에서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를 "바람피우기 가장 힘든 도시"라고 농담삼아 부른다고 합니다. 도시에 사는 인구가 너무 적다보니 나쁜 짓을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금방 들키게 된다는.. 그만큼 인구가 적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 섬 남서부에 해당하는 레이캬네스 반도에 자리한 항구도시입니다. 가이드북을 읽어보면 대기가 깨끗한 도시라고 하는데 아이슬란드 자체에 공장이 많지 않다보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실제 아이슬란드에 가면 달걀이 썩는 것 같은 유황냄새를 어디서든 맡을 수 있습니다. 워낙 지열발전이 대중화된 나라이다보니 전기도 난방도 지열발전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사색이 깊어지는 늦가을 분위기처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차분했습니다. 주변에 깨끗한 세계 최고의 어장을 두고있어 수산업으로 나라 경제를 이끌어오다 낮은 조세정책과 미국과 유럽 사이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해외자본을 끌어들이고 이를 다시 해외에 투자하는 형태로 국가경제를 탈바꿈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도로를 달리다 마주친 대형 파라볼라 안테나. 이곳은 아이슬란드의 국영방송사 RUV입니다.
아이슬란드는 영상산업이 발달한 유럽의 국가답게 자국의 영상제작업체들에게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합니다. 또한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영상에 담고 영화를 촬영하려는 전 세계 영상제작사들로부터 끊임없는 촬영 의뢰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Öskjuhlíð 라는 이름의 언덕 위에 있는 둥그런 원통이 3개 모여있는 형상의 건물의 이름은 페를란 Perlan 입니다. 현지 파트너 업체 사람들과 전망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자고 해서 찾아간 곳이었습니다. 건물 뒤쪽으로 원통이 2개 더 있어 5개의 원통 위에 둥그런 모자를 씌운 구조입니다. 내부는 박물관, 레스토랑, 전망대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페를란의 원래 용도는 온수탱크였던 것을 1991년 지금의 모습으로 개조하여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페를란을 방문하고 가져왔던 브로슈어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페를란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보면 다양한 전시와 함께 놀이기구도 있는 걸 알 수 있지만, 2009년 당시에는 홈페이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아이슬란드는 불과 얼음의 나라라는 별명에 더해 풍부한 온천수가 자랑이기도 하죠. 페를란 내부에는 지하수가 솟아오르는 분수가 있는데 아마 페를란의 원래 용도였던 온수 저장을 상징하는 분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에는 일을 하러 갔었기 때문에 일과 관련이 없는 이런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듭니다. 지하수는 어찌나 힘이 좋은지 건물 상층부까지 솟아오릅니다. 방문객들은 분수 수조에 동전을 던져 행운을 기원하기도 하죠.
페를란 레스토랑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그 때만해도 음식 사진 찍는 건 썩 좋은 모습을 비쳐지지 않았죠. 기억에 남는 건 연어 요리를 먹었다는 것, 그리고 음식 가격이 상당히 비쌌다는 정도입니다.
페를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풍경입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 가끔 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도 합니다. 공기의 온도가 낮아서인지 실제로 그런지, 공기가 깨끗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묘한 느낌의 유황냄새도 바람을 타고 심심치않게 날아옵니다.
'생기방랑 여행기 > 아이슬란드 - 불과 얼음의 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여행 -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4 (2009) 그린다비크 염장 대구 공장 (0) | 2021.09.15 |
---|---|
오래된 여행 -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3 (2009) 솔트피시 박물관 Saltfish Museum (0) | 2021.09.08 |
오래된 여행 -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2 (2009) 염장대구와 솔트피시 박물관 COD and Saltfish Museum (0) | 2021.09.04 |